무 정         소설 목록으로


새로운 사랑과 교육을 부르짖다 

 

젊은이들의 열광 속에 연재되었던 소설

 두 갈래 길에서 고민한 적이 있는가?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망설이면서 이 길 저 길을 재보던 적이 있는가? 또는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던 적이 있는가? 여자라면 두 남자 사이에서 이 남자와 저 남자를 재보면서 망설인 적이 있는가?

1917년 <매일신보>라는 신문에는 이같은 한 남자의 갈등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그의 갈등을  보며 함께 앓았다. 바로 [무정]이라는 연재소설을 통해서였다.

1917년. 수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소설 [무정]이 세상에 나왔다. 젊은이들은 형식과 영채, 선형의 사랑과 결혼에 가슴 졸였고, 어디를 가나 그들에 관한 이야기꽃이 피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무정]이 젊은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우려했고,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이던 중추원에서는 [무정] 연재를 중지하라고 항의하기까지 했다. 글쎄, 풍속을 해친다고 생각했을까?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4일까지 126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무정]. 먼저 이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 보자.

 

소설의 줄거리

경성학교 영어 교사인 형식은 김 장로의 부탁을 받고 그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선형은 정신 여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가려는 지식인 여성이다. 선형을 처음 대한 형식은 그 고운 자태에 호감을 느낀다. 그날 형식의 하숙집에서는 박영채라는 기생이 형식을 찾아 온다. 영채는 형식을 길러준 은인의 딸이다. 부친과 두 오라비가 어느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힌 뒤 외가에 가서 갖은 고생 끝에 자기 아버지를 구하고자 기생이 되고 말았다. 그런 고생을 겪으며 그는 형식이를 마음 한 가운데 두고 정절을 지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형식의 앞에서 자기가 기생이 되었노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되돌아 간다. 형식은 한편으로 영채의 순결을 의심하며 불괘함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달콤한 그리움을 느낀다.

그러던 중 형식은 경성 학교 학감 배명식의 추문을 듣는다. 평양에서 온 기생 계월향의 꽁무니를 따라다닌다는 거였다. 그는 영채가 계월향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가 다시 영채를 만나려고 찾아갔을 때 영채는 배학감과 김현수에게 이끌려 다른 곳에 가고 없었다. 형식은 신문기자인 신우선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행방을 찾아냈으나 영채는 순결을 잃은 뒤였다.

영채는 형식을 위해 지켜온 자신의 정절을 빼앗긴 것이 수치스러워 죽으려고 평양으로 향하고, 편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식은 영채의 뒤를 따라 평양으로 간다. 그러나 영채를 찾지 못하고,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서울로 되돌아온다.

한편 영채는 병욱이라는 처녀를 만나 인생을 새롭게 살기로 결심하고, 병욱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면서 병욱의 오빠에게 연정을 느끼기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한다.

서울로 돌아온 형식은 선형 집안의 청혼을 받게 되고 마음 한편으로 영채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형식과 선형이 미국 유학을 위해 경성역에서 기차에 오르던 날, 영채와 병욱 역시 일본으로 가기 위해 같은 기차를 타게 된다. 그들은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나게 된다. 지난 날들을 돌이키며 이들 사이에는 부끄러움과 미움, 질투와 원망이 오고간다. 그러던 중 폭우를 만나 기차가 멈춘 틈에 수해를 당한 농민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면서 이들은 조선의 민중을 구하기 위해 배우고 또 교육에 몸바치기로 작정한다.

 

무정의 인물과 시대상

무정을 읽으며 우리 인물 속에 크게 자리잡는 인물은 크게 세 명이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이형식과 영채, 그리고 선형이다. 이 셋은 이 소설의 줄거리를 엮어나가며 그 시대의 의미를 읽게 해 주는 인물들이다.

이전의 고대 소설 주인공이 수려한 외모와 지성,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변덕 무쌍한 사람이다. 영채와 선형에 대한 감정도 그러하고, 여성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다.

자기 앞에 기생이 되어 나타난 영채를 보고 그가 순결한 여자일까, 아닐까를 궁리하던 모습이며 그러면서도 영채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선형의 지위와 고운 용모에 호감을 갖는 것 등 통 종잡을 수 없다.

 

대체 자기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선형인가, 영채인가. 영채를 대하면 영채를 사랑하는 것 같고, 선형을 대하면 선형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까 남대문에서 차를 탈 때까지는 자기는 오직 선형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듯하더니, 지금 또 영채를 보매, 선형은 둘째가 되고 영채가 자기의 사랑의 대상인 듯도 하다. 그러다가 또 앞에 앉은 선형을 보매 '이야말로 내 아내, 내 사랑하는 아내'라는 생각도 난다.

 

평양에 갔다가 영채의 시체를 찾지도 않고 돌아온 것에 죄책감을 느껴 다시 평양으로 가려던 형식에게 선형 집안의 청혼 소식이 전해진다. 그때 형식이 보여준 태도는 인간의 솔직한 마음인지 아니면 형식의 무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굴리고, 이랬다 저랬다 할 때의 형식은 줏대없는 남자 같지만 선형과 결혼하여 선형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할 때는 여성주의자 같기도 하다.

 

"물론이지. '저'라는 것이 있으니까.......누구든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가 있으니까. 남의 힘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저'를 좌우하겠나. 남더러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하고 충고하거나 알려주는 것은 좋지마는,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너는 이렇게 해라 하는 것은 참람한 일이지."

우선은 미상불 놀랐다. 그러나 그럴듯하다 하였다. 그러면서도 설마 그러하랴 하였다. 그러나 더 토론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형식의 사상은 자기와는 다름을 깨닫고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을 뿐이다.

 

또 형식은 훌륭한 교육자로 민족의 장래에 큰 몫을 할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교사이기도 하며, 민족의 장래를 깊이 걱정하는 선각자다운 사람이기도 하다.

형식이 일관된 인물로 그려지지 못함은 이광수라는 작가가 작품을 탄탄하게 엮는 실력이 없어서인가? 물론 신문 연재 소설이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형식의 모습에서 바로 그 시대상을 바라본다. 형식은 이전의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얽혀 있는,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팽팽하게 긴장하는 그 시대상 바로 그것이었다. 형식은 고스란히 그것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이다. 과거의 것은 거부하고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나 그대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신기하고 받아들이고 싶고 동경의 대상이지만 분명히 알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의 태도는 일관성을 잃고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여인 영채, 어정쩡한 새 시대의 여인 선형

영채와 선형이라는 두 여인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채란 인물은 이광수에겐 형식의 과거, 민족의 과거를 대변하는 인물인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그날 그날 잘 살고 있는 형식 앞에, 게다가 분홍빛 장래를 예감하게 해주는 선형과의 만남이 있는 바로 그날 형식의 앞에 나타난다. 기생만 되지 않았다면, 신식 교육만 받았다면, 순결한 여염집 색시라면 덥석 안고 싶은 한 여자로 나타난 것이다.   

영채가 가진 사고방식 역시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기생이 된 것이며, 아버지의  '너는 형식의 색시 되어라'는 한 마디에 형식을 마음 한 가운데 두고 절개를 지켜간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폭력에 의해 순결을 잃고 그것이 부끄러워 자살하려고 평양으로 떠나는 것 역시 수천 년 동안 우리 여성을 묶고 있던 굴레였다. 영채는 바로 '과거의 여인'인 것이다.

이런 영채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준 이가 병욱이다.

 

"아니오. 영채 씨는 지금까지 꿈을 꾸고 지나셨지요. 허깨비를 보고 지나셨지요. 얼굴도 잘 모르고 마음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허합니까. 그것은 다만 그릇된 낡은 사상의 속박이지요. 사람은 제 목숨으로 삽니다. 제가 사랑하지 않는 지아비가 어디 있겠어요. 하니깐 영채 씨의 과거사는 꿈입니다. 이제부터 참생활이 열리지요."

...

이렇게 생각하매 영채는 잘못 생각하였던 것을 깨닫는 생각과 또 아주 절망하였던 중에 새로운 광명이 발하는 듯하였다.

 

형식을 다시 만난 기차 안에서 영채는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절규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던 과거의 여인 영채는 세상을 원망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아니요. 다만 그 일만 아니야요. 이 세상이 내 원수가 아니야요? 내 부모를 빼앗고, 내 형제를 빼앗고, 내 어린 몸을 실컷 희롱하고..... 그러다가....그러다가 마침내 내 정절을 ....내 정절을 빼앗고.... 그러고는 일생에 생각하던 사람은 아랑곳도 아니하고.... 이렇게 구태여 나를 없애고 말려는 세상에 내가 구태여 붙어 있으면 무엇해요. 세상이 나를 미워하면 나도 세상을 미워하지요. 세상이 나를 싫다 하면 나도 세상을 버리고 달아나지요.....하늘로 올라가지요"

 '과거'라 할 수 있는 영채에 비해 '새로운 시대의 여성'이라할 선형의 모습은 생동감이 없다. 신식 교육을 받았으나 그는 진취적인 사고나 행동은 없다. 자기 배우자에 대해 막연한 꿈을 꾸고, 부모가 권하는 대로 결혼을 결정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여성의 모습은 병욱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주관에 따라 행동하고,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는 총명한 여성이다. 이광수는 병욱을 통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의 여성의 모습이나 애정관을 보여준다.

 

무정의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들이 지금 우리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치기도 한다. 사랑 이야기만 끝까지 사랑 이야기로 갈 것이지 갑자기 교육이 튀어나오는 것은 뭐며 조선 민중을 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지는 건 또 뭔가. 너무 촌스럽다. 이런 생각들이 맴돌기도 한다. 이런 촌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은 그대로 1910년대 우리 현실, 지식인들의 모습이었으리라. 1800년대 말 세계 강대국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좋든 싫든 받아들인 서구의 문물, 그건 지식인에겐 강렬한 호기심과 혼란을 주었을 것이고 한편으로 열등감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녔던 유교적 질서를 부정하는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1910년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에 지식인이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런 혼돈의 시대상 속에서 [무정]은 조금은 덜 세련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사랑의 씨를 말리는 옛 시대를 비판하며

이런 맥락에서 [무정]은 두 가지 문제를 관심 있게 다루고 있다. 한다. 하나는 '새로운 사랑의 모습'이며 또다른 하나는 '교육을 통한 민족의 구원'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다 어설프지만  과거의 사랑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광수 자신도 작품 속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조선서는 천지개벽 이래로 오직 춘향, 이 도령의 사랑이 있었을 뿐이다. 저마다 춘향이 되려 하고, 이 도령이 되려 하건마는 다 그 곁에도 가보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의 흉악한 혼인 제도는 수백 년래 사랑의 가슴 속에 하늘에서 받아가지고 온 사랑의 씨를 다 말려죽이고 말았다. ....

 

이제 다시 형식에게로 돌아가 보자. 영채와 선영 사이에서 인간적인 모든 약점을 보이며 줏대없이 굴었던 형식의 모습은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그 시대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형식의 모습에서 우리는 긍정적, 부정적인 모습을 모두 바라보게 된다. 영채에 대해 무정한 그의 모습에서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영채의 순결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의 모습에서 인습에 사로잡힌 한 인간을 본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지워버려야할 과거의 유산과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작품을 곰새기다 보면 우리는 영채야말로 이 작품의 줄기를 이루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을 팔아서까지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 부모님의 한 마디를 기억하며 절개를 지키는 행동, 순결을 잃었으니 죽어야 한다는 생각 등 과거에 여인들을 옭아매던 인습 속에서 희생 당한 여성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상은 여성에게 정말 '무정'했던 것이다.

[무정]을 읽은 남학생들이 이런 독후감을 쓰기도 한다. '나같으면 영채를 용서하고 사랑할 것이다'라고. 그러나 영채는 용서받아야할 죄를 짓지 않았다. 그는 그야말로 시대의 희생자, 남성의 희생자였다. 이광수가 이런 점을 좀더 부각시키지 않은 것은 그 또한 지나간 시대의 질서에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이광수가 생각한 '교육'은 무엇인가?

작품의 또다른 축인 '교육'은 중간 중간 양념처럼 끼어든다.  형식은 교육을 통해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무지몽매한 민중을 일깨우기 위해 가르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정]의 마지막 부분에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하여서 생활의 근거를 완전하게 하여주어야 하겠다. '과학! 과학!'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부르짖었다.

……(중략)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이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

"교육으로, 실행으로."

 

이형식은 우리 민족이 가난 속에서 불쌍한 삶을 살게 된 것은 미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으로 '그들'을 깨우쳐야 한다고 느낀다. 그가 생각한 교육은 '문명'이었고 그 문명은 '서구 문명'이다. 이런 형식의 생각은 커다란 문제점을 지닌 생각이다. 하나는 우리 민족이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난의 원인은 교육의 부족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또 이형식은 지식인으로서 우월감을 갖고 있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취급하고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 가서 유학을 하고 돌아오는 것을 큰 선구자처럼 여기고, 큰 성공으로 여기는 얄팍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형식이 갖고 있는 교육관은 그대로 이광수의 생각이다. 이광수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논설 [민족개조론]에서 정치적 색채를 띤 독립협회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교육의 진흥, 산업 발전, 민중에 대한 교육과 훈련' 등을 주장했다. 잘못된 정치가 외세를 불러들였고, 외세의 침략은 우리를 혼란과 가난, 노예 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무정과 이광수

새로운 표현, 새로운 내용은 [무정]을 근대소설의 모습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게 한다. 개화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시대 적응 양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각에서 어설픈 그대로 그 시대 인물의 모습을 비교적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쓴 춘원 이광수는 다양한 작품과 함께 굴곡진 삶의 모습으로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작가이다.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춘원은 집안이 점점 기울어져가는 것을 보며 성장한다. 열한 살 되던 해에 콜레라로 아버지, 어머니, 막내 여동생을 잃게 된다. 그는 다섯 살 아래 여동생을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친척집을 전전한다. 형뻘 되는 사람 집에서 형수의 학대로 뛰쳐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동학의 대접주인 서병달이란 사람의 눈에 띄어 박대령(대령-동학의 한 직책)이란 이의 집에 머물며 서기 일을 하기도 했다. 이때 박대령의 딸 예옥은 춘원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1905년 그는 일본 유학생 모집에 합격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오쿄오 유학생 사이에서는 병든 조국을 지키고 외국 세력을 몰아내자는 애국사상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다. 이런 민족사상의 영향을 받고 한편으론 문학에 눈뜨기 시작했다.

방학중 고향으로 돌아온 춘원은 부친과 잘 알던 가난한 선비의 딸 백혜순과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사흘 만에 백혜순의 곁을 떠났고 나중에는 이혼하게 된다.

1910년 메이지 학원을 졸업한 춘원은 오산학교 교원에 취직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광수는 남강 이승훈의 감화를 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뒤 이광수는 오산을 떠나 상해, 미국 등을 전전한다. 이후 그는 김성수의 도움으로 다시 동경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 [무정]을 연재했다. 무정의 등장인물인 영채나 형식의 행적은 이광수의 행적과 흡사하다.

[무정] 이후 춘원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지만 일제가 패망해가는 시기인 30년대말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리고 민족의 비극 6.25전쟁 중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을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케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고 작품의 맨 뒤에 썼던 춘원의 생애는 그리 행복한 결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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